제목 | 인간 관계에 대하여 | ||
---|---|---|---|
등록일 | 2017/05/29 | 조회수 | 1000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말 할때는 남의 귀를 즐겁게 하지말고 남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나의 말이 남의 가슴을 아프게 쏘는 화살이 되지 않게 하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 함을 간단한 말로 표현할때, 그 표현이 상대의 마음을 울리고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으니, 표현력의 부족을 걱정하기
보다는 내 마음의 진실함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상대가 미울 때 대상을 보지 말고 내 마음속에 올라오는 그 마음을 닦아야 한다.
그리고 미운 마음이 없어 질 때까지 "저 사람이 신심발심해서 부처님전에 복 많이 짓길 발원" 하고 원을 세운다면, 복 지으라는 그 마음이
내 마음이기에 그 사람보다 먼저 내가 복을 짓게 되고 복지으면 아량이 넓어 내 마음이 그리 뾰족하거나 가파르지 않다.
상대를 진실로 부처님~ 하고 대하면, 그 순간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경건해지면, 우리 마음에 부처님 하는 밝은 자국이 남는다. 결국 우리
자신이 밝아지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이가 있다면 그이가 바로 그 순간 부처님이실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잠재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기까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자기 잘난 마음에는 지혜가 없어져 남의 자존심을 짓밟아 원한을 사게 된다. 한번 원한을 사면 인과의 사슬에 묶여 여러 생 원한을 주고
받게 되므로 , 자신이 부족한 줄 알고 공부를 하다보면 지혜가 생겨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치게 된다.
아랫사람을 아랫사람이라 생각지 않고 그들에게서 배울 마음을 내고 , 먼저 공부를 했다고도 생각지 않고 부처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생각하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창피한 일은 없다.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에 '나'라는 고통도 없고, 시봉에는 '나'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기에
그 순간은 모두가 극락이고 밝은 일뿐이다. '나'라는것은 몸뚱이이면서 고통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나'란 것이 없으면 세상은 편하고 넓은데, 내 아버지, 내 사람, 내 재산, 내자식 등 '나' 라는 것이 붙으면 좁고 불편해진다. 이렇게 '나'
라는 것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중생이고 나라는 관념이 뭉친 것이 아상이다. 마음 닦는 이는 나와 남의 육신을 공평하게 보고,
나에게 필요하더라도 남이 더 필요로 할 때는 줄 수 있어야 한다.
남이 내게 무었인가. 주고 싶도록 내 마음을 비우고, 남이 내게 절하고 싶도록 '나'라는 아상을 닦아야 한다.
남의 일이든 내일이든, 일을 피하는 마음 무었이든 귀찮아하는 마음은 게으른뱅이 마음이다. 이 마음을 닦지 않으면 자기가 떳떳이 설 자리
가 없다. 마음에 좋고 싫음이 남아 있다면 아직 재앙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남을 흉보는 것이 재미있으면 자기 마음에 진심(성내는 마음)
이 있는줄 알아라.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마음속에서 싫고 미운 마음이 올라 오면, 그때 상대를 시비하지 않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남을 미워 허는 마음부터
닦으려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마음이 미운 사람에게 나 가있고, 돈 버는데 나가 있고, 애욕 채우는데 나가 있으면 내마음 들여다
볼 겨를이 없다.
보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라도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을 연습해라. 그러면 내 마음이 넓어 지고 , 상대의 마음도 펴지게 된다. 주위의 사람을
부단히 부처님으로 보게되면 공경심이 생기고, 마음의 안정이 얻어지고, 자비심이 생긴다. 가족이나 친척을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을 쉼없이
연습하고 마음을 들여다 보고 바치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여야 한다.
업보를 갚을때가 되면 갑자기 고기를 씹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어난다. 전생의 원수를 갚고 싶다는 말일 수 도있다. 그런 살생업보들이
부부나 형제, 친구, 직장동료로 만나면 사이가 안 좋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짐승을 잡아 먹지 말 것이며 특히 " 이닭,
이고기 잡아주시오." 하고 지적하여 결정적인 업보를 짓지 말아야 한다. 영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반을 잘 모시고, 공부하는 이를 잘 모시는 마음은, 바로 부처님을 잘 모시는 마음과 하나이다. 그 마음 바탕이 잘 다져진 이는 부처님
모시는 공경심이 그득하다. 남의 마음이 밝아지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먼저 자기 마음이 밝아지는 법이다.
나를 밝게 해 주시는 분은 모두가 나의 부처님이시다. 사람 마다 밝고 귀한 점이 있으니, 그것을 배워 실천하려 한다면 바로 부처님 뵙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부처님은 내 주위에 얼마든지 계신다. 집안의 부처님들, 직장의 부처님들, 거리의 부처님들, 버스속의
부처님들.
공경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공경을 받는 그이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공경심을 내는 그 순간 바로 내가 행복한
것이다.
자산의 영생을 위해서 하심(下心) 하고 현실을 위해서도 하심(下心)해야 한다. 겸손하고 하심하면 마음도 편하고 지혜가 생긴다. 그리고
자기만 높이지 않으면 인간관계도 부드러워진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이 살아야 겠다는 생각 때문에 모두가 차고 냉담하다. 부모 형제보다 내가 먼저이고, 이웃이나 국가보다 내 이해관계가
먼저라는 철두철미한 아상을 연습하며 살아 왔기 때문에 그것은 나무랄 수 없는 중생의 본성이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원래
세상이 그렇고 사는것이 그렇지 않을까 . 그러니 마음이 사람에게도 일에도 빠지지 말고 올라오는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면, 필시 그 사람과 전생에 엮어놓은 원인이 있을 것이니, 그 마음을 닦아 해탈하여야 한다.
그립다거나 밉다거나 하는 생각이 나면 그 생각을 얼른 부처님께 바쳐라. 숨겨진 감정의 찌꺼기라도 찾아서 바쳐야 한다.
불법은 나를 낮추고 비우는 공부다. 나를 낮추고 비우자니까 주위 사람을 부처님으로 모시자는 것이고, 마음에 부처님을 모시는 사람이면
하는 일이 다 잘될 수밖에 없다. 부처님 하는 그윽한 광명을 마음에 공경심으로 모시니 그사람이 하는 생각과 말이 전부 다 밝다. 그리고
재앙이 없다. 부딪히는 게 없다. '나'란걸 가득 안고 말하면 다 부딪힌다. '나'란 아상의 파장이 상대의 아상에 자극을 줘서 불꽃이 튀긴다.
그러니 아상을 닦아라.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살면 24시간이 참 즐겁다. (김재웅 지음 '마음 닦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