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삶의 목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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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6/08 | 조회수 | 895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마음은 영원한 자신의 재산이고 미래이다. 마음속에 도사린 나를 불행하게 하는 업장을 닦는 것은 결코 허무하지 않는 일이다. 장점은 연습하고 단점은 고치는 것이 수행이다.시봉이란 부처님을 받들어 모심을 말한다. 수도는 시봉하는 마음이 되어 있을때 비로서 밝고 완벽해진다. 내가 공부하고 내가 밝아져야하고 내가 업장을 닦는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 나의 아상과 주위 사람의 아상이 서로 부딪쳐서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위해 법시간 지키고 이 마음 바칠 수 있다면 매사는 한결 부드러울 것이다. 세상은 원래 조용한 것인데 자기의 분별 때문에 소란스럽고 괴로운 것이다.
무슨일을 하던지 부처님 시봉을 위해 하면 된다. 밥 먹을때, 누구을 만날때, 마음이 흐트러지는 그때그때마다 '부처님 시봉을 위해' '부처님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한다고 연습하는 것이다. 부처님만이 업보가 없는 당처이다. 부처님을 향해야 응무소주가 되지. 그냥 무심히 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의 업보를 향한다. 금강경에서는 누차에 걸쳐 이 경을 수지 독송하거나,다른 사람을 위해 이야기 해주면 공덕이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밝은 부처님의 말씀을 남에게 전해주는 경우에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생각은 빠져야 한다. 그 생각은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일을 하던 부처님을 기뻐게 해드리기 위해 한다면, 그게 바로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고 한 것처럼 마음이 자유스럽고 제한이 없어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며, 그 공덕은 헤아릴 수 가 없는 것이다.나를 위해, 내 생각 대로 사는 것은 지혜를 가로막는 일이다. 내 마음 속에 올라 오는 생각은 버려도 아까울 것이 없으니 부처님께 정성껏 바쳐라. 마음 연습하여 남을 위해 살고부처님 잘모시는 삶을 산다면, 그 마음이 우주에 가득 차서 부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나'라고 하는 놈은 무었이든 붙잡아야지 그냥은 못 배긴다. 그놈 때문에 우리가 고통과 윤회의 중생계를 벗어 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부처님께 바치면 거기에는 아만과 아집이 없으므로 시기, 질투, 명예를 위한 다툼이나 이권을 위한 싸움도 없고 , 오직 공경과 환희심으로 밝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불국토이다. 부처님으 모시는 마음이면'나'라는 고통이 없다.시봉에는 '나'란 것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극락이고 밝은 일 분이다.'나'란것은 몸뚱이이면서 고통이기 때문이다.
밝음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는 이들은 내면적인 충실을 위해서 무었보다도 밖의 일에 혼란 스럽지 않아야 한다. 마음 밖의 모든일을 쉬면 내면 세계의 깊숙한 곳에 있는 닦을 거리들을 더욱 또렸하게 보인다. 그렇게 공부가 익어서 아상이 없어진 이는 허공처럼 조용하다. 마음의 향내는 과향(果香)보다 진하다.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에서 비린네가 나고 향을 샀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난다. 탐 진 치 삼독이 비린네라면 밝은 마음, 아름다운 마음은 향내일 것이다. 과연 내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닦지 않는 지혜가 있을 수 없고, 짓지않는 복이 있을 수 없다. 정신에 미안치 않는 것이 지혜이면 육신에 미안치 않는 것이 복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생각해보라. 남에게 가슴 아픈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어떤 형태로든지 남에게 손해 끼치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만일 하루에 두가지 나쁜 일을 했으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서 세 가지 좋은 일을 하고 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날 하루 의 결과로 끝나야 한다. 오늘 나쁜일 두가지 했는데 내일 좋은일 세 가지를 하겠다고 한다면 진리답지 않은 삶이다. 오늘은 오늘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 하루하루를 매듭지어 가며 사는 내생이 정말 좋지 않겠는가.
부처님 가피가 있는곳 . 밝은 기운이 있는 도량은 계행을 지키고, 열심히 닦고, 부처님전에 복 짓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중생은 가족이 아니라 자기 육신이다. 육신이 자기가 아니고 정신이 자기이기 대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천 수억만 생을 육신이 자기인 줄 알고 오욕락(재욕,성욕, 음식욕, 명예욕,수면욕)을 추구하며 육신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다. 부처님을 향할때 정신을 위해 살게 된다. 공경심이 나지 않더라도 억지로 라도 공경심을 연습해 보아야 한다. 마음은 길들이ㅣ기 나름이니, 연습을 자꾸 하는 것이 중요 하다. 남을 흉보게 되고, 악심을 연습하면 자꾸악심이 나오며, 아이를 가르치는데도 한번 매를 들기 시작하면 자꾸 매를 들게 되듯이, 공경심을 연습하다보면 마음이 차츰차츰 공경스러워진다. 마음에 공경심을 그득 연습하면 그 얼굴도 티 없이 맑고 순수 해진다.
상대를 부처님으로 보라. 부인은 남편을 부처님으로 보고 남편은 부인을 부처님으로 보며, 도한 직장동료를 부처님으로 보고, 이웃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라. 그 순간 내마음에 그듯한 보람과 부처님 광명의 마음이 얼마나 우리를 편안하게 하며, 과거 생 찌든 업장을 녹이는가.상대를 부처님으로 보는 순간에 느끼는 환희의 공경심. 그것은 어떤 경제적인 부나 인생의 쾌락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 기쁨을 내면으로 만 끽하면서 빙그레 미소 짓고 사는 사람은, 바로 보살심을 연습하고 보살행을 하며 보살도를 닦는 사람일 것이다.
공부라는 것은 부처님 광명을 향해서 영혼을 밝히는 공부를 하겠다. 업장을 닦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이 세상에 그런 사람도 희귀하다. 그런데 내가 내 공부를 한다. 내가 내 업장을 닦는다고 하면 공부 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공부하고 닦아서 밝는 경지로 가겠다는 생각에는 아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닦으면 곧 부처님이라는 말씀이 금강경에 나오는데, 나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첩경이 무언가 하면 부처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살고 , 공부 하려는 목적도 부처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공부 하려는 목적도 부처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부처님을 친견하도록 공부하라. 부처님께서 기뻐하실 생각과 행위를 하라. 공경심를 개념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말고, 상대를 부처님이라고 크게 믿고 보면, 공정심이 나면서 자기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내가 강하며 강할수록 고통스럽고 부딪치는게 많다. 내가 없고 부처님만 모시다면 그 냥 밝고 즐거울 뿐이다. 부처님 모신 공덕으로 마음이 편하고 나를 모시는 공덕이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편안한 마음이니 하는 행동도 하는 말도 편안하다. 나란 아상이 없다. 자기의 맑은 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진실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자기의 맑은 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나라를 사랑할 수 있다. 나라를 사랑한다는것은그 나라에 속한 많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며, 그 마음은 보살이다.
수행자라고 한다면 계를 지키고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서, 그 마음의 공덕과 훈기로 , 다른이들의 고통을 쉬게 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남을 이익 되게하면서 자기도 밝게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욕심, 자기의 명예를 바쳐서 다스리면서 많은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봉사하는것이 보살도를 닦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나의 마음도 잘 닦아야 하지만 남의 아픔과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부처님전에 원을 세우고 기도하는 자비심도 늘 연습해야 한다. 선행하고 공덕 짓는 일을 자꾸 실천해서 마음에 기쁨이 그득한 것이 인생의 진정한 기쁨이다.(김재웅 지음 '마음 닦는 법' 중에서)
고맙습니다. 성불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