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사불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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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7/07 | 조회수 | 852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말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는다. 생명이 없는 무정물까지도 언젠가는 다 없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것(生)과 죽는 것(死)은 분명히 다른 반대 현상인데 왜 같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당연히 생기게 된다.
부처님의 연기설을 보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고 한다. '이것'과 '저것' 자리에' 생'과 '사'를 넣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곧 생(生)이 있기 때문에사(死)가있고, 사(死)가 없으면 생(生)도 없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왜냐하면 생은 사의 최후의 모습이고, 사는 생의 최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다'는 말은 '죽어가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았다.' 는 것은 바로 24시간 내 생명을 단축시켰다는 뜻이다. 따라서 ' 처음부터 죽어간다'고 했더라면 모두들 체념 할 텐데 '살아간다.' 고 하면서 실은 죽어 가는 것이 현실이니까 안죽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생만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생 그 자체도 무의미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낮과 밤의 교차로 인해서 하루의 시간이 완성되고 , 어둠은 더욱 명확하게 해 주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사물은 상반되는 것이 서로의 존재가치를 더욱 분명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죽음(사)이 있기 때문에 삶(생)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더욱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본질인 죽음을 보면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왜 그럴까? 이유눈 단 하나 바로 자기 육신에 대한 애착감 때문이다. 자신이 입던 헌 옷은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리면서도 자신의 육신만은 병들어도 애착 때문에 바꾸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우리가 죽어서 생명이 다할 때만을 죽음으로 생각하고 죽음이 끝나서 다른 생으로 옮겨 가는 그 찰나만을 죽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사)은 세상에서 완전히 없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것(生)을 가리킨다. 마치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고, 애벌레가 다시 번데기가 되고 , 그 번데기는 나비가 되듯이 말이다. 이때 애벌레 세계에서는 분명 한마리가 죽은 것이고, 번데기 세계에서는 분명 식구가 늘어난 것이다. 나비 세계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겠다. 그들은 이름과 형상이 분명 달라졌지만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다.
이와 같이 생과 사는 모든 생명에 공통되는 한 현상일 뿐 다른 두 개의 개체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