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서원 | ||
---|---|---|---|
등록일 | 2017/07/10 | 조회수 | 906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우리들은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항상 크고 작은 원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지금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있게 된 것도, 이전에 내가 세운 많은 원들의 결과와, 그 원에 대한 내 행동이 크든 작든 작용하였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거나 나빳다고 하여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자신에 대하여 무책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세웠던 원과, 그 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대승불교는 실로 서원(誓願)으로 이루어진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원이 없는 불.보살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성불하시기 전, 보살행을 닦을 때 세우신 서원을 본원이라 한다. 그리고 이 본원에는 다시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총원은 모든 불보살들의 공통적인 서원으로서, 바로 사홍서원이 이에 해당된다. 우리가 법회의식에서 매번 사홍서원 하는 것도, 이러한 실천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미에서이다.
불보살님은 각기 세운 원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별원이라 한다. 예를들어 아미타불의48대원을 비롯하여 약사여래 12대원, 보현보살의 10대원 등을 가르킨다.
그렇다면 불보살님조차도 왜이렇게 원을 세우시는 것 일까. 예를들면 100미터를 목표로, 또 1000미터를 목표로 정하고 달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을때, 앞사람은 다 달려도 겨우 100미터밖에 달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뒷사람은 달리다가 중간에 포기를 하고 그만두더라도 이미 500미터를 달린 셈이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무지개 같은 원만 세우고서 그것을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방치해 놓고 요행만 바란다거나, 자신이 세운 원이 비도덕적. 비사회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이 중생을 이롭게 하듯이 이타적(利他的)인 서원을 세울때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자리(自利)의 공덕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아울러 서원은 무었보다 계속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뒤 따라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향하여 똑바로 가는 이는 한눈을 팔 겨를이 없듯이, 역시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는 이는 바른 길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