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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과응보;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
등록일 2017/07/24 조회수 889
작성자 낙천원 주변에알리기 트위터 페이스북

  부처님의 말씀은 추호도 거짓이 없다. 불교는 분명히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가르침이다. 단지 선악의 행위에 대한 결과만을 놓고 볼 때 빠르고 느림이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 순현보수(順現報受)는 현세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이 세상에서 바로 받는 것이고, 둘째 순차생수(順次生受)는 행위의 결과를 다음 생에 가서 받는 것이며, 셋째 순후차수(順後次受)는 다음다음 생애 가서야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이 불행을 당하는 것은, 현재 짓고 있는 선행이 결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서 그가 이전에 지어 놓은  업에 대한 결과를 지금 받고 있는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면 교도소에 가게 된다. 즉 당장에 자신의 행(업)에 대한 과보가 현실에 나타나는 경우이다. 그러나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다치는 사람도 있지반 어떤 사람은 전혀 다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툭툭 털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 간다. 그런데 석 달 후에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일 년 후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병원에 가 보니 이전에 있었던 교통사고 의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났다는 진단을 받는 경우가 있다.

  어떠한 경우의  질병도 갑자기 생겨나는 법은 없다.  흔히 급성맹장염이라고 하는것도  실은 급성이 아니라  이미 그 원인 조성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발병이 된 것이다ㅣ.

  다만 우리가 긴 시간을 두고 살피지 않고, 한 순간만을 보기 때문에 현실의 행. 불행이 모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ㅎ에 불과 할 뿐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자업자득이기 때문에 오히려 바꿀 수도  있고, 내 의지로써 개척할 수도 있다.

  만약에 이것이 절대자나 초월자의 힘으로 결정된다면 우리들의 노력은 얼마나 무의미해져 버리겠는가? 돌맹이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물위에  뜨지  않고 가라않는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하지만 집채만 한 바위라도 배에 싣는다면 얼마든지 물위에 뜰 수가 있지 않는가?  이와 같이 그 배를 만드는 것도 자기 자신의 의지이기 때문에  바로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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