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언; 알 수 없는 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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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8/01 | 조회수 | 1010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진언은 말 그대로 진실한 말이란 의미이고, 한역으로 신주 또는 밀언이라 번역된다. 그리고 다라니도 역시 신비한 힘을가진 주문이란 뜻인데, 한역으로는 총지라고 한다. 즉 총은 모든 공덕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고, 지는 마음에 새겨서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또는 능차라고도 하는데 모든 잘못을 사전에 막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진언과 다라니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주문의 형식을 빌려서 적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원음 속에 모든 공덕이 다 들어 있다고 믿었다. 바꾸어 말하면 고도로 응축된 말, 바로 그 말의 힘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말은 진정한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가령 남으로 부터 상처 받는 말을 갑자기 들었을때 어떤가? 몇 년 동안 잊지 못할 때도 있다. 반대로 우연히 들은 한마디 칭찬에 용기를 얻어 인생의 행로를 바꾸게 된 경우도 있다. 그 어느 쪽도 한 마디의 말이 만들어 낸 힘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힘도 이러할 진대, 하물며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은 그 힘이 어떠 하겠는가? 문제는 왜 그것을 번역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도의 범어 경전을 역경가들이 한문으로 번역할 때, 두가지 방법, 즉 뜻 번역인 역과 소리번역인 음역을 이용하였는데, 진언과 다라니는 이 후자에 해당된다.
물론 그 중에는 경전의 원본이 현존하는 것도 있으므로 번역하려면 할 수있지만, 오히려 뜻 번역을 함으로써 진언이 지니는 참뜻을 살리지 못하고 오류를 범할까 염려한 때문이다.
어쨋든 진언과 다라니는 함축된 진리의 말씀이므로 진리 그 자체 합일하기 위해서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원음을 따라 읽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 율 론 을 번역하신 스님들은 물론이고 옛 조사 스님들도 결코 번역하지 않는 게 아닐까?
끝으로 설명을 덧붙이자면 조금 긴 것을 다라니라고 하고, 짧은 것을 진언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