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심우도(목우도, 십우도) | ||
---|---|---|---|
등록일 | 2017/08/14 | 조회수 | 1148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심우도는 십우도, 목우도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중국의 곽암 스님과 청거 스님의 그림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주로 곽암 스님의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다.
(1) 심우(尋牛) : 소년이 소를 찾아 나서고 있다. 소를 왜잃어 버렸는가 하는 원인에 대한 규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먼저 소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것을 자각하고 찾아 나서는 것이 급선무이다. 마차 화재가 났을때, 방하범은 누구이며 피해액은 얼마인가를 따지기 전에 우선 불을 꺼야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디 과연 무었이 가장 급선무인가를 파악하고 실천해야 함을 알려 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2) 견적(見跡) :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의 발자국은 결코 소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대도 소 발자국을 보고 소를 찾은냥, 도중에 안도해 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목적울 향해 가다가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쉽게 안주하듯이 말이다.
(3) 견우(見牛) : 소의 모습을 겨우 발견하고 뛰어 간다. 진리와 목표를 추구하고 노력하면 마침내 이루게 된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내용이다.
(4) 득우(得牛) : 소년이 고삐를 힘껏 잡아 당기고 있다. 비로소 소는 붙잡았으나 그동안 소는 이미 야성에 물들어 좀처럼 소년의 말에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소라는 확신이 있으므로 소년이 쉽게 포기하지 않듯이, 우리에게 불성이 있음을 믿기때문에 비롯 당장 결과는 보이지 않더라도 정진을 멈추지 않는것과도 같다.
(5)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인다.이 단계에는 득우에서와 같은 갈등은 이제 사라 졌으나, 아직 고삐라는 제약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서로 조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년이 소 등에 걸터 앉아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 간다. 이때는 서로가 서로를 이미 구속하고 있지 않는 단계이다. 그로나 과연 소년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 아니면 소가 소년을 태우고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매사를 일방적으로만 생각하는경향이 있다. 때로는 상대의 입장에서 서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는 보이지 않고 소년의 모습만 있다. 소는 내 본성을 찾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도 소도 없어지고 단지 둥그런 원만이 있다. 그러나 이 원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그 동안 원을 보지 못했던 것은 소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존재라도 그것을 인식할 때만이 비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일에 정신이 팔려서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러나 깨달음의 단계에 이러렀다고 하여 어떤 새로운 세계가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텅 빈(空) 세계인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우리들 주변의 자연을 그렸다. 우리가 본성을 되찾았을때, 그 어떤 대상도 분별과 차별을 하지 않고, 아무런 꾸밈도 주관도 없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 존재해 온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대상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온갖 가식을 동원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가.
(10) 입전수수(入?垂手) : 포대 화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노인이 소년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 즉 중생제도를 위해 거리로 나와서 이타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교가 궁극적으로 무었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깨달음의 완성은 바로 중생 교화에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면,심우도는 우리들이 가슴속에 노닐고 있는 한 마리 소(본성)를 찾아내고 그것을 잘 다스러서 근본자리로 돌아 갈 수 있기까지의 수행과정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