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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르침
등록일 2017/09/04 조회수 1118
작성자 낙천원 주변에알리기 트위터 페이스북

제1장 인연

                                                                  네 가지 숭고한 진리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다 고통이다. 미운 자와 만나는 것. 사랑하는자와 이별하는것. 얻지 못할 것을 얻으려고 허덕이는 것이 모두 고통이다.욕망과 격정에 사로 잡힌 인생은 항상 괴롭다. 이것을 고통의 진리(苦)라고 한다.

  인류가 받는 고통은 번뇌에서 오는데, 그 번ㅁ뇌의 욕망은,그것이 욕망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면 죽기조차 한다. 이것을 고통의 원인의 진리(集諦)라고 한다.

 욕정에 뿌리 내린 번뇌를  뽑아 버리고 집착을 죽여 버리면 모든 사람의 고통이 끝난다. 이것을  고통 단절의진리(滅)라고 한다.

 사람이 욕망과 고통이 없는 경지에 들어 가려면 다음의 여덟가지 정도를 밟아야 한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마음 가짐, 바른 마음의 통일, 이것이 고통을 단절하는 정도의 진리(道諦)이다.

 사람이,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서 빠져 나오려면 여덟가지 정도를 마음에 깨끗이 간직하고 유일한 고통의 근원인 번뇌를 버려야 한다. 번뇌와 고통을 면하고 사는길은 '깨달음' 뿐이고, 깨달음을 얻는 길은 오직 여덟가지 정도뿐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서 앞서 말한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모르면, 환영(幻影) 같은 세속 생활의  미로를 끝없이 헤맨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아는 사람은 '깨닫는 힘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마음을 집중하고 그 뜻을 분명히 알도록 힘써야 한다. 온 세기를 통해 진정한 성인(聖人)은 이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알아서 남들에게 가르쳤다.

 사람이 네가지 숭고한 진리를 깨달으면 여덟가지 정도에 힘입어 탐욕이 없어져서 싸우지 않고, 죽이지 않으며,훔치지지 않고 간음하지  않으며, 속이지 않고, 비방하지 않으며, 아첨하지 않으며, 시기 하지 않으면, 화내지 않으면, 인생이 덧없음을  잊지 않으며, 정도를 어기지 않는다.

 숭고한 진리를 터득하고 숭고한 도를 따르는 사람은  무지의 암흑을 씻어 버릴 지혜의 빛을 가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숭고한 진리를 다만 암시하심으로써 중생을 인도하시는데, 그 암시에 따라 진리를 잘 터득한 자는 깨달음을 얻어 혼란한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을 인도하고 용기를 주므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한다. 사람이 네 가지 숭고한 진리를 체득하면 속된 번뇌의 근원(無明)이 말라 버린다.

 네 가지 숭고한 진리를 터득한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따라 온갖 소중한 진리를 배워 삼라만상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얻어 온 세상 사람에게 부처님의 도를 전할 수 있게 된다.

                                                                                   인연

  세상의 모든 현상은 막대한 인연에서 생긴 결과이므로 그 인연이 변해 없어지면 그 인연에서 생긴 결과이므로 그 인연이 변해 없어지면 그 인연에서 생긴 결과가 사라지듯이, 모든 인류가 격는 고통도 그 인연을 없애면 끝이 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식물이 무성하고, 잎이 피었다 지는 등 모든 현상에 인연이 있어서 그것이 변하면 거기서 생긴 모든 현상이 사라진다.

  사람은 부모의 혈통을 이어 태어나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이 자라고 가르침과 경험으로 마음이 성숙한다.

 그러므로 그런 인연이 변하면 심신도 변한다.

  많은 코를 이어 떠서 그물을 짜듯이 이 세상 모든 사물도 수많은 작은 성분이 모여서 생겼다. 그러므로 그물을 이룬 눈들을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물은 많은 코를 연결해 얽었기에  그물이라 하고, 코 하나하나는 제각기 한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코들을 연결해 주는 구실을 한다.

  꽃은 피어나게  인연이 있어서 피고, 잎은 질 만한 인연이 생겨서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꽃이나 잎이 제철을 벗어나서 홀로 피고 지지 못하듯이, 모든 것이 생멸하는데엔 인연이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연속하는 인연에 따라서 생멸하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법칙이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히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로 의지하며

   사람은 왜 고뇌하고 비탄하고 고통으로 몸부림쳐야 할까? 그것은 사람이 욕망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와 명예,안주, 쾌락, 흥분, 방종, 자아에 완강하게 집착해서 그것들을 탐내는 것이 고통의 원인임을 모르고 있다.

   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재난이 가득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극심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병들고 늙고 죽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서 고통의 근원이 집착에 있음을 알고 그것을 없애면 모든 고통이 끝난다.

   사람의 마음에 충만한 집착은 연속하는 사물의 참뜻을 판단하지 못하는 탐애에서 온다.

   무식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얻을 수도  없는 것을 불순한 욕망을 가지고 무턱대고  부단히 찾아 해맨다.

  인간의 행위에는 본래 옳고 그른 구별이 없는데, 무지한 사람이 그것을 가상하고 판단한다.

  무지한 사람은 언제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 정당한 판단력을 잃고, 자아에 얽매여  멋대로 행동하며, 가공적 실재에 집착한다.

  교만한 행동의 밭에 제멋대로 판단하는  마음의 씨를 뿌려 몽매한 마음으로 판단력을 마비시켜 탐애의 비로 적시고, 오만한 마음의 물울 주어 악의 온상에서 기른 망상의 화신을 받들고  싸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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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슬픈 망상과 비틴과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현실은 중생의 몸이 만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미망은 깨닫는 마음이 나타남에 따라 드러난 그림자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잘못된 견해가 있는데, 사람이 여기에 현혹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한다.

  첫재는 모든 사람의 경험은 숙명이 결정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만물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신이 뜻대로 부린다는 것이며, 셋째는 세상 모든 일은 어떤 인연도 없이 우연히 생긴다는 것이다.

 만일 세상 모든일이 숙명으로 결정된 것이라면 착한 행동과 악한 행동이 예정된 것이며, 행복과 불행이 운명으로 정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진보하고 발전하기 위해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이 모두 공허한 일이고, 인류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을 것이다.

 다른 두 견해도 마찬가자이다. 모든 일을, 알 수 없는 신이나 우연이 좌우하다면 인간은 거기에 굴종할 수밖에 없으므로 희망을 잃어 악을 멀리 하고 선하게 살아 보려는 노력도 안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개념이나 견해는 옳지 못하고, 모든 일은 필연적인 인연이 쌓이고 쌓여서 생긴 현상의 연속이다. 

유심론과 사물의 진상

                                                   무상과 허상

  몸과 마음은 원인이 모여서 나타나지만 실체가 없고,육신은 물질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덧없다.

  만일 몸이 실체라면 무었이던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은 제 뜻대로 상줄자에게 상을 주고 벌할자에게 벌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었지만 제 의도나  소망과 상관 없이 병들고 , 아무리 싫어도 늙어서 어떤 소망도 운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마음도 인연이 모인 허상(虛像)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한다.

(907)

  만일 마음이 실체라면 무었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이껬짐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옳은 일을 하려다가 과오를 저지른다. 말하자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에게나 몸이 영원한 것이냐 덧없는 것이냐 하고 물으면,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덧없는 것(無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덧없는 인생이 즐거우냐 과로우냐 하고 물으면, 태어나는 자는 누구나 멀지 않아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느겼을때 괴롭다고 할 것이다.

  몸이 이렇게 덧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괴롭게 사는 것을 실체라고 믿는 것은 큰 잘못이다. 

  마음도 덧없고 괴롭지만 실체가 아니다.

  외부세계에 둘러 싸여 각자의 생명을 이루는 몸과 마음은 '나'와 '내것' 이라는 개념과  거리가 멀다.

  사람은 '나'나 '내것' 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완간하게 집착하는 불순한 욕망 때문에 마음이 흐리고 지혜가 무너진다.

  몸과 그 주위 환경은 인연이 어울려서 생겼기 때문에 끝없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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