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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염주(四念住)
등록일 2017/10/24 조회수 927
작성자 낙천원 주변에알리기 트위터 페이스북

  사염주(四念住)란, 첫째 몸은 부정한 것이므로 거기( 몸)에 속한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 둘째 그것이 아픔을 느끼거나 즐거움을 느끼거나 관능은 모든 고뇌의 근원임을 알고, 셋째 마음은 항상 유동하고 있음을 알고, 넷째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의 결과이고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달관하는 것이다.

  사정근(四正勤)은 첫째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아예 생기지 못하게 하고, 둘째 이미 생긴 악은 즉시 없앨 것이며, 셋째 누구에게나 선행을 하도록 권해서 선을 생산하고, 넷째 이미 생긴 선이 한 없이 자라도록 북돋워서  이 네가지 절차를 꾸준히 지켜야 한다.

  오력(五力)은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다섯가지 힘인데, 첫째 믿음에 대한 신념, 둘째 꾸준히노력할 의지, 셋째 조심성 있는 재능, 넷째 마음을 집중하는 능력, 다섯째 맑은 지혜를 유지하는 지속력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은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한 여섯가지 수행인데, 법과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보시(布施)와 계행을 지키는 지계(持戒), 모욕을 받아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인욕(忍辱), 잡념을 버리고 불도를 믿는 정진(精進), 참선하여 삼매경에 드는 선정(禪定), 미혹을 없애고 보리(菩提)를 성취하는  지혜(智慧)를 말한다.

  보시는 이기심을 없애고, 지계는 남의 권리와 이익을 존중하게 하고, 인욕은 공포감과 분노를 견디게 하며,지혜는 어둡고 혼란한 마음을 밝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바꿔 준다.

  보시와 지계는 큰성을 쌓을 토대를 이루고, 인욕과 정진은 외적을 지키는 성벽이 되고, 선정과 지혜는 생사의 강습(强襲)을 막아주는 갑주(甲胄)이다.

   형편이 좋을 때만 베풀거나, 베풀지 않는것이 제게 이로울  때만 베푸는 것도 물론 보시지만,  그것은 참다운 보시가 아니다. 참다운 보시는 누가 구하기에 앞서 넘치는 인정으로 하는 것이며, 때때로 생각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는 것이다.

  베푼 뒤에 아까워서 후회 하거나 자찬하는 것은 참다운 보시가 아니다. 참다운 보시는 기쁨으로 주고 시혜자인 자신과 선물까지도 잊어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보시는 보답을 원치 않고, 남들과 함께 깨닫는 길로 들어 가려는 순수한 자비심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재산이 없이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는 육신, 즉 노동으로 봉사하는 신시(身施)인데 그 극치는 다음 얘기의 주인공처럼 목숨 바쳐 보시하는 사신행(捨身行)이다. 둘째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인데 이것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심시(心施)다. 셋째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줄 수 있는 눈길을 보내는 안시(眼施)이고, 넷째는 웃는 얼굴로 부드러운 표정을 보이는 화안시(和顔施)이고, 다섯째는 친절한 말로 온정을 베푸는 언시(言施)이고, 여섯째는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상좌시(狀坐施)이고, 일곱째는 하룻밤 묵어 갈 나그네에게 방을 내어주는 방좌시(房座施)다. 이런 보시는 일상 생활에서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옛날에 살타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두형과 함께 숲으로 놀러 갔다가, 몹시 굶주린 끝에 제 새끼 일곱마리를 모두 잡아 먹으려고 하는 암펌 한 마리를  만났다. 이것을 보고 겁에 질린 두  형은 달아 났으나 살타 왕자는 새끼 범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바로 앞에 있는 절벽에 올라 엄펌 앞으로 몸을 던졌다.

  살타 왕자는 이 자선 행위를 '나는 듯없이 변하는 내 몸을 사랑하기 대문에 던져 버리는 것이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 범에게 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타 왕자의 이런 생각은 깨달음을 어기 위한 단호한 결심을 보여 준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무량심(無量心)이 있는데,

  첫째 탐욕을 버리고 무한한 자애를 베푸는 자무량심(慈無量心)이고, 둘째 절대로 화내지 않고 애정을 베푸는 비무량심(悲無量心)이고, 셋째는 고뇌를 없애고 기쁨을 주는 희무량심(喜無量心)이고, 넷째는 원한을 버리고 원수를 벗처럼 대하는 사무량심(捨無量心)이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주는 일은 큰 사랑(慈)이고 불행한 사람을 도와 주는 일은 큰 동정(悲)이고, 모든 시람을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 주는 일은 큰 기쁨(喜)이고, 모든 사람을 똑같은 감정으로 대하면서 기쁘고 만족하게 해주는것은 큰 희사(捨)이다.

  네가지 무량심을 지닌 사람이 조심해서 노력하면 탐욕과 분노,  고뇌, 애증심을 떨쳐 버릴 수 있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악한 마음을 버리기는 기르는 개를 버리는 것처럼 어렵고, 착한 마음을 놓치기는 물에 쓴 글자를 놓치는 일 만큼이나 쉽다. 그러므로 깨닫기 위해서 심신을 닦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슈로나라는 젊은이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 났으나 몸이 허약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제자가 된 그는 발에서 피가 나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부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슈로나야, 너 집에서 거문고를 타 본 적이 있니?  거문고는 줄이 너무 팽팽하거나 느슨하면 탈 수가 없고, 알맞게 조절해야 고운 소리를 낸다. 깨달음을 얻는일도 거문고를 타는 일과 같아서, 네가 마음의 줄을 너무 팽팽하게 죄거나 느슨하게 하면 깨달을 수 없으니 , 모름지기 신중한 마음으로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슈로나는 이 말씀의 뜻을 잘 새겨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옛날에 다섯가지 무기를 잘 다루는 왕자가 있었다. 하루는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찰 하나를 만 났는데 예리한 창끝으로 그 살갗을 찔러도 다치지 않는 것이었다.  

  나찰이 다가오자 왕자는 의연하게 활을 쏘았으나  나찰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작살을 던졌으나 나찰의 두꺼운 가죽은 끄떡 없었다. 다음에는 쇠 몽둥이와 창을 던졌으나 나찰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다음에 던진 칼은 나찰의 몸에 맞아 부러졌다. 무기가 다 없어진 왕자는 나찰을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으나, 나찰이 즉시 거대한 두 팔로 왕자의 몸을 싸안아서 꽉 붙잡는 바람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찰이 " 너, 아무리 버터 봐야 소용없어, 이제 너를 먹어 버릴테야." 했다. 그러자 왕자는 "넌 무기가  다 없어져서 내가 어쩔수 없게 된줄 아나 본데 내겐 아직 한 가지 무기가 남아 있다. 네가 나를 먹으면 나는 네 뱃속에서 너를 죽일테다." 하고 말했다.

  이렇게 용기 있는 모습에 질린 나찰이 "어떻게 죽일 수 있는냐?고 묻자, 왕자는 "진리의 힘으로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나찰은 왕자를 풀어 주면서 그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빌었다.

  이 우화는 불제자들에게 어떤 역경에 직면해도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 하라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수행을 같이 시작해도 남보다 빨리 깨닫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므로, 먼저 성취한 사람을보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궁술(弓術)을 을 연마하는 사람이 빨리 성취하려고  서두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면 백발 백중할 수 있게 된다. 강은 작은  시내에서 시작하지만 대양에 이르는 동안에 점점 커진다.

  불자도 이와 같이 불굴의 의지를 지니고 꾸준히 노력하면 틀림없이 깨달음을 얻는다.

  앞에서 이미 말한 대로 사람이 두눈을 바로 뜨고 있으며 도처에서 교훈이 보이고 깨달음을 얻을 기회도 끝이 없다.

  한 남자가 향불을 피우면서  향 냄새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을 보았는데, 이 사소한 일이 그 사람을 깨닫는 길로 인도했다.

  한 남자가  가시에 발을 찔려 심한 아픔을 겪은 끝에 아픔은 마음의 반응일 뿐이라고  생각했더니, 다음 순간에는 마음은 관리를 잘못하면 통제의 손길을 벗어나 불순해지지만 잘 조절하면 순결해진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뒤에 깨달음을 얻었다.

  탐욕스러운 남자 하나가 있었다. 하루는 제 탐욕스러움을 반성하다가는 탐욕은 지혜를 태워 없애는 대팻밥이나 불쏘시개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깨달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평탄하게 하라. 그러면 온 세상이 평탄해 지리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을 음미해 보면 이 세상이 고르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차별하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임을 알 것이다. 이 말 속에도 깨달음으로 이끄는 길이 있으니, 진정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한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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