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원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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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등의 사상
등록일 2017/11/27 조회수 749
작성자 낙천원 주변에알리기 트위터 페이스북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 세계는 인도만이 아니라 그 어느곳이던 힘 있는자가 힘없는자를 짓밞고  노예로 부리던  시절이었다. 역사는 몇몇 지배계급만을 위해서 흘러갔다. 노예화 된 하층민들은 몇몇 지배계급의 재산 목록으로 가축과 같은 신세가 되어 비참하게 목숨을 이어갔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말은 생각조차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 노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이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너 자신을 알라' 고 웅변 했지만, 사변적인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사상들이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여 평등사회를 구현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디. 그러나 석존은 달랐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스스로가  절대 평등 자유의 주인공임을 역설하고 이를 직접 실천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몸소 실천을 통해 계급을  타파하고 누구나 평등한 삶을 살아 갈수 있도록 무차별의 장을 마련한 석존은 평등사상의 위대한 실천자이다. 석존은 불교 교단에 입문한 순으로 정했다. 선후배를 아난과 우빨리의 출가 예를 통해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빨리는 석가족 왕실의 이발사로 천민이다. 아난은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다. 아난이 출가한다는 소리를 듣자 우빨리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자기도 출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자리에서 승낙하고 출가 입문 시켰다. 그래서 우빨리는 간발의 차이로 아난보다  먼저 출가 하여 사형이 된다. 이것은 당시의 인도 사회의 풍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했던 것도 , 불교의 교리에 심취해서 이기도 하지만, 이 차별없는 평등사상에 더 많은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석존이 말년에 귀족의 공양 요청은 거절하면서 창녀 암팔리가 바치는 공양을 받은 사실에서와 같은, 그 당시로는 상상하기어려운 혁명적 행동을 석존이 했기 때문에 불교가 대중적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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