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원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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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대승불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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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12/18 | 조회수 | 907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대승불교의 성격>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개인적 해탈을 뛰어넘어,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다 같이 해탈을 얻어 행복한 싦을 살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종교의 목적이며 깨침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것이다. 석존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개인의 해탈만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들은 깨침을 목적으로 하되, 그냥 자기 혼자만의 성불할 것이 아니라, 깨쳐서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건지겠다는 서원을 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해서「 위로는 깨침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를 이루는 보살의 서원이 성립한다.
대승의 행동방식을 정리하면
① 자신의 구제에만 전념하는 것에서 벗어나 타인을 위한 활동이 바로 자기 이익을 위한 수행의 완성이 된다는 교리를 내세운다.
② 대승은 재가자(在家者)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데에 대승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자 만이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재가와 출가를 구별하지 않았다.
③ 지혜롭고 착한 사람뿐만 아니라 어리석고 나ㅃ쁜 살함이라도 버리지 않고 구제ㅔ하려는 적극적 입장을 취취햇다. 어리섯ㄱ은자나 약자까지도 감싸는 폭넓은 불교가 된 것이다.
④ 현실구제로서의 불타가 요청되었기 때문에 초월적 능력의 붓다를 추구하였다.
⑤ 모든 사람이 보살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한다. 석존 하나의 붓다에서 벗어나 무수한 부처와 보살들의 출현이 이로써 가능했다.
이러한 이념으로 출발한대승불교는, 합리주의를 표방하며 불교를 지역종교에서 탈피시켜 세계적 종교로 부상시켯다. 그 장대하고 장엄한 사상은 신이라든가 성인의 거룩한 말씀에 국집하지 않고 중생의 입장에 입각하여 불타와 합일되는 붓다관을 성립시켰다. 서양의 이성주의가 인간과 신을 분리하며 논리를 전개 기키는 사상이라면, 대승불교는 중생의 본질에서 붓다를 보고, 붓다의 본질에서 중생을 수용하는 우주관을 피력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승불교가 창출해 낸 것이 보살사상과 함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이다.
대승불교는 불타의 지혜를 넘어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며,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향한한 신앙심이 왕성하고 돈독하게 일어나도록 고취함으로, 대중들이 불교를 신변 가까이에서 항상 접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로써 불교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대승불교는 '대중'과 '신앙'에 촞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만인이 함께 갈 수 있었고, 이러한 태도는 대중들의 믿음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대승의 신앙 형태는,
① 개인이 아닌 대중을 중시하여 믿음을 향상 시켰고
② 분석적인 방법보다 직관을 중시하여 신앙에의 열정을 유도하고
③ 의식보다 무의식을 강조하여 내면의 기도를 촉진 시켰다.
④ 자기완성보다 대중의 구제에 힘을 기울여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⑤ 열반에의 안주보다 현실 참여를 통해 현실개선을 이루어었다.
⑥ 또한 이성보다 감성에 중점을 두어 불상의 조각 등 수많은 불교 예술품을 탄생시켰다.
대승의 수행자들은,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모두 함께 다 같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광범위하고 포괄적 신앙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율장과 특정교리에 구애 받지 않으며 자유롭고 활발하게 종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종교 활동가들을 보살이라 부른다. 이 보살들의 수행방법은 육바라밀의 실천이다. 고통 많은 사바세계인 차안(차岸)에서 벗어나 극락세계인 피안(피岸) 즉 저 언덕에 도달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이상이고 중심사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