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원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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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애욕으로 인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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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8/04/20 | 조회수 | 971 |
작성자 | 낙천원 | 주변에알리기 |
사람들은 애욕으로 인해 걱정이 생기고 걱정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긴다. 애욕에서 떠나 버리면 무었을 걱정하고 무었을 두려워할 것인가.
도 닦는 사람은 마른 풀을 가진 것과 같아서 불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수행인으로서 욕망의 대상을 보게 되면 마땅히 멀리 해야만 한다. 나이 많은 여인은 어머니로 생각하고, 손위가 되는 이는 누님으로, 나이 적은 이는 누이동생으로 어린이는 딸과 같이 생각하여 제도하리라는 마음을 내면 부정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 흐린 세상에 태어났으나 연꽃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아야 한다. 라고 생각하라.
도 닦는 사람은 마치 나무토막이 물에 떠서 물결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다. 양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누가 건져 가거나 썩지도 않는다면 이 나무는 틀림없이 바다에 들어갈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도 이와 같아서 정욕에 빠지거나 온갖 그릇된 일에 흔들리지 않고 정진에만 힘을 쓴다면 그는 반드시 도를 이룰 것이다.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된다.
사랑하는 이를 가지지 말고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여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람은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원이 된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어떠한 구속됨도 걱정도 없다.
악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욕됨을 참아 분함을 이기고 착함으로써 악을 이겨라
남에게 베풀어 인색함을 이기고 지극한 정성으로 거짓을 이겨라.
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 다시 사람의 몸을 망치니
마치 녹이 쇠에서 생겨나 바로 그 쇠를 먹어들어가는 것과 같다.
가장 뜨거운 것, 가장 빠른 것, 가장 빽빽한 것
음욕보다 뜨거운 불길은 없고 성냄 보다 빠른 바람은 없으며, 무명 보다 빽빽한 그물은 없고 애정의 흐름은 물 보다 빠르다.
죽음이 가장 큰 괴로움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 하셨다.
"가섭이여 고(苦)에는 죽음이 가장 크다
폭풍우가 쏟지면 나무와 숲은 모두 걱이고 말지만, 금강석만은 깨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폭풍우가 모든 중생을 다 쓸어 가지만, 대승 열반의 경지에 있는 보살만은 헤치지 못한다. 금시조가 모든 용을 잡아먹지만 삼보에 귀의한 요은 먹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금시조도 그 와 같아서 무수한 중생을 잡아가지만 공(空),무상(無常),무원(無願)의 선정에 든 보살은 잡아갈 수 없다. 죽음이란 험한 길에 노잣돈이 없는 것과 같고, 먼 길을 가는데 길 동무가 없고, 밤낮으로 가도 끝을 알 수 없는 길과 같다. 어두운 길에 등불이 없고 들어갈 문은 없는데 집만 있으며, 아파도 치료할 수가 없고, 내 몸에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죽으은 참으로 괴로움이다.
가섭이여, 집(集)이란 애욕을 말함이다. 사랑에는 선과 아이 있는데, 선한 사랑은 보살이 구하는 것이요. 악한 사랑은 중생이 구하는 것이다. 중생은 사랑은 집착이요, 보살의 사랑은 집착이 아니다. 왕이 거동하면 신하가 따라가듯이 애욕이 가는 곳에는 항상 미혹이 따른다. 축축한 땅에는 자잡초가 마구 자라듯 애욕의 습지에는 번뇌의 잡초가 무성하다. 또 애욕은 나찰의 딸과 같아 아이를 낳는대로 잡아먹고 중생까지도 잡아 먹는다. 또 애욕은 꽃밭에 숨은 독사와 같다. 사람들은 곷을 탐해 꽃밭에서 꽃을 꺽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중생들은 오욕의 꽃을 탐핟하다가 애욕이 뿜는 독에 중독되어 마침내 악도에 떨어진다.
멸(滅)은 애욕의 불이 거짐이다. 보살은 번뇌의 불을 끄고 맑고 고요한 적멸에 들어간다. 번뇌가 다한 사람에게는 즐거움뿐이므로, 어떤 괴로움도 받지 않는다.
도(道)란 팔정도이다. 빛이 있어야 물체를 볼 수 있듯이, 보살은 대중속에 살면서 팔정도에 의해 모든 법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대승의 열반에 머물러 고,집,멸,도의 참된 이치를 관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