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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이부경
등록일 2018/05/10 조회수 1542
작성자 낙천원 주변에알리기 트위터 페이스북

십이부경(十二部經)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세분하여 십이부경(十二部經)이라고 한다. 십이부경이라는 것은, 경전에 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경전 가운데 설해 있는 내용이 열 두 가지의 사항(事項)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법화경 뿐 만 아니라 다른 경전을 읽을 때에도 언제나 나오는 것이므로 대략 말해 두고자 한다,.

 

십이부경(十二部經) 

 

1.  수다라(脩多羅) - 계경(契經)

2.  기야(祇夜) - 중송(重頌)

3.  가타(伽陀) - 고기송(孤起頌)또는 풍송(諷頌)

4.  니타라(尼陀羅) - 인연(因緣)

5.  이제목다(伊帝目多) - 본사(本事)

6.  사다가(사多伽) - 본생(本生)

7.  아부타달마(阿浮陀達磨) - 미증유(未曾有)

8.  아바타나(阿婆陀那) - 비유(譬喩)

9.  우바제사(優婆提舍) - 논의(論議)

10. 우타나(優陀那) - 자설(自說)

11. 비불략(毘佛略) - 방광(方廣)

12. 화가라(和伽羅) - 수기(授記)

이상이 십이부경 이다. 대승이나 소승이나 모든 경전에 이 이 열 두 가지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경전을 읽다 보면 더러는 이십이부경을 읽으면 이라고 나오는 경이 있다

십이부경 이란 경전이 갖춘 토탈 구성이므로 이구성을 안다는것은 경전을 보는이로 하여금을 대신한다

 

1. 수다라(脩多羅 )라는 번역해서 계경이라는 것은 보통 문장으로 교(敎)을 대충 설하신부분이다. 게송(偈頌)이 아닌 지금까지 읽어 온 보통의 문장이다. 부처님의 교를 종횡(縱橫)으로 설하신 것이다.

 

2. 기야(祇夜)라는 것은 게송(偈頌)이다. 석자 또는 넉 자의 어귀(語句)를 이어서 시(詩)와 같은 형태로 된 것이다. 게송은 보통 네 귀 이상이다. 이 게송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중송(重頌)이란, 앞의 계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되풀이 한 부분이다.

 

3. 가타(伽陀)라는 것도, 게송인데 고기송(孤起頌)이라고 번역한다. 이것은 앞의 계경에서 말하지 않으신 부분이다. 요컨데, 게송에는 앞의 말한 것을 되풀이 하는 것과 앞에 말하지 않으셨던 것의 두 가지가 있다.  

 

4. 니타나(尼陀那) 번역해서 인연(因緣)이라는 것은,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치로만 말해서는 잘 모르므로, 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이러한 일을 했다. 하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들어서 교를 이해게하시는 부분이다.

 

5. 이제목다(伊提目多) 번역하여 본사(本事)라는 것은, 부처님의 제자며 교를 듣는 사람들에 대해, 너는 지금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으나, 전세(前世)에서는 이러한 일을 하고 있었다 하고, 그 사람의 전생(前生)의 일을 설하신 부분이다.

 

6. 사다가(사多伽)는 본생(本生)이라고 번역한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나는 지금 갑자기 부처님이 된 것이 아니다. 전생에서부터 이러이러한 선근(善根)을 쌓아서 부처님이 된 것이이다 하고, 부처님의 전생의 일을 설하신 부분이다.

 

7. 아부타달마(阿浮陀達磨) 번역해서 미증유(未曾有)라는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미간(眉間)의 백호광(白豪光)이 동방을 비쳤다는 것과 같이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모든 인간의 주의를 끌어서 마음을 바로잡게 하는 것이다.

 

8. 아바타나(阿婆陀那)라는 것은 비유(譬喩)라고 번역한다. 알아 듣게 쉽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신 부분이다.

 

9. 우바제사(優婆提舍) 번역해서 논의(論議)라는 것은 설명하는 것이다.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하신 부분이다.

 

10. 우타나(優陀那)는 자설(自說)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시는 것, 남이 묻지 않아도 부처님께서 자진해서 설하신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처음에는 묻지 않는데 설해야 듣는 편이 주의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묻는 것에 대해서만 대답을 하고 저편에 의문이 있으면 그 의문에 대해 교를 설해 주고 도 다른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에 대해 교를 설해 주고 하여, 차차 가르쳐 인도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근기가 높아지면 이번에는 저편이 의문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부처님께서 자진해서 교를 설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자설(自說)이다.

 

11. 비불략(毘佛略) 번역해서 방광(方廣)이라는 것은, 방(方)은 바른 것, 광(廣)은 넓은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털어놓아 설하시는 것이 방광이다. 교의 순서로서, 맨처음에는 신심(信心)하는 자는 구원받는다, 신심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착한 행동을 하고 있는 자는 부처님에 가까운 사람이요, 악한 행동을 하는 자는 부처님에게서 먼 사람이다, 하고 설하신다. 방편으로서는 그것으로도 좋지마는, 차차 그렇게 설해서 맨마지막에가서는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소위 방광입니다. 착한 사람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도 구원 받는다. 신심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신심하지 않는 사람도 그 마음 깊이 파고 들어가면, 역십 부처님에 가까운 본성(本性)이 있다. 부처님과 인연이 없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설하신 부분이다. 

 

12.  화가라(和伽羅)는 수기(授記)라고 번역하는데, 부처님께서, 지금의 네 마음가짐을 그대로 언제가지나 변하지 않고, 차차 수행을 쌓아 가면 결국은 부처님과 같이 된다고 다집을 주시는 것이 수기이다. 그런데 수기에는 반드시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무조건 수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지금의 그 마음을 변치 않고 계속해서 수행하여 많은 중생을 구원하는데 노력하고 노력해 가면, 반드시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른다"하는 조건이 반드시 붙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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