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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등사상
등록일 2018/05/29 조회수 1064
작성자 낙천원 주변에알리기 트위터 페이스북
  불교를 말하면서 불교의 대표사상인 평등사상을 지나칠 수가 없다. 우주 전체와 더불어 차별없는 절대 평등체가 우리들 정신의 실체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아(無我)라는 사상이 그것이다. '무아'란 나라고  하는 개체로서의 별도로 고정된 존재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자기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의 본질 즉 자기의 본래 고향인 우주의 평등체로 돌아가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석존은 이 같은 사상을 실생활에실천하셨다. 그러므로 석존은 종교이전에 아주 인간적인분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세계는 인도만이 아니라 그 어느 곳이던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짓밟고 노예를 부리던 시절이었다. 역사는 몇몇 지배계급만을 위해서 흘러갔다. 노예화된 하층민들은 몇몇 지배계급의 재산목록으로 가축과 같은 신세가 되어 비참하게 목숨을 이어 갔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가운데 노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이 삶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너 자신을 알라'고 웅변 했지만, 사변적인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사상들이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 할 수가 없지만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여 평등사회를 구현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석존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스스로 절대 평등자유의 주인공임을 역설하고 이를 직접 실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몸소 실천을 통해 계급을 타파하고 누구나 평등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무차별의 장을 마련한 석존은 평등사상의 위대한 실천자이다. 
  석존은 불교 교단에 입문한 순으로 사람은 나이, 직업, 가문, 계급에 관계없이  불교에 입문한 순으로 선 후배를 정했다. 아난과 우빨리의 출가 예를 통해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 할수 있다. 우파리는 석가족의 이발사로 천민이다. 아난은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다. 아난이 출가 한다는 소리를 듣자 우파리가 부처님을 찾아가 자기도 출가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출가입문 시켰다. 그래서 우파리는 간발이 차이로 아난보다  먼저 출가하여 사형이 된다. 이것은 당시 인도 사회의 풍습으로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었다. 
  석존 사후 500년이 흐르고 난 다음 예수의 탄생은  시민주권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핍박 받는 서민 사이에서 교세를 키웠으므로 자연히 국가의 지배 계급과 충돌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결국은 인민을 군주의 종속으로부터 신의 종속으로 바꾸어 놓은 것에 불과했다. 신에의 헌신과 복종을 강요하는 신교는 지배자의 지배도구로 탈바꿈하여, 로마교황청이나 유대교나 극렬 기독교 이슬람교도와 같은 광신 집단을 탄생 시킨다. 이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지배를 합리화 하며 대중의 재산과  영혼을 착취했다. 
   지금 인도에 가보면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신분차별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조금 다르다고 하는 것은  군주의 군림이 아닌 형식적으로나마 신분차별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 했고, 그 불교의  평등 박애사상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인도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있다면 박물관이나 항폐해진 유적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것은, 불교 사상과 인도 고래의 힌두교 사상이 거의 같기  때문에 불교가 흰두교에 흡수된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근본철학에 있어서는 절대 다르다. 불교는 만민평등 사상이고 힌두교는 계급사상이다.  부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 했던 것도, 불교의 교리에 심취해서 이기도 하지만,  이 차별없는  평등사상에 더 많은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석존이 말년에 귀족의  공양요청은 거절하면서 창녀 암팔리가 바치는 공양을 받은 사실에서와 같은, 그 당시로는 상상키 어려운 혁명적 행동을  석존이 했기 때문에  불교가 대중적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때에는 평등주의  세력을  넓혀갔다. 그렇지만 부처님 입멸후 부터는 세력이 약해지다가 계급주의 투쟁적 강세에 밀려 평등주의가 소멸하고 만다. 근세의 성인이라고 칭하는 간디도 무저항에 평등을 부르짖었지만 계급주의를 이용, 지지을 확보할  수 밖에 없었다. 진정한 성인 이라면인도 인구의 60%가 넘는 천만의 신분차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성인과 교주의 출현이 천민 해방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다면 이런 출현은 사회의 해악이 될 수도 있다. 침묵은 동조 일수 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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